미야오- 손바닥만 한 새끼 고양이 두 마리가 내가 놓아주는 사료 그릇을 따라 모여들며 작게 울었다. 리브로 뒤뜰에는 사장이 마음이 약해서 저들을 내치지 못하는 걸 아는 떠돌이 고양이들이 많았다. 나도 종종 리브로를 오가면서 생각날 때마다 아이들에게 사료를 줬다. 저녁 7시. 여름 저녁의 늦은 해가 충분할 시간이지만 오늘은 날이 흐린 탓에 일찍 가려져 곧 어...
임선호 선배와 하던 '연애 비슷한 것'은 두세 번의 만남으로 끝났다. 동기들 붙잡고 그 난리를 친 게 허무하게도. 그래도 손은 잡아봤는데 문제는 선배가 그 이상의 진도를 원했고 나는 남자랑 손잡아 본 적이 아빠와 남동생 이후로 처음이라 어버버하다가 선배의 속도를 못 맞춰준 거. 근데 사귀자는 말도 없이 손부터 덥석 잡고, 갑자기 뽀뽀하자고 얼굴을 들이밀면 ...
교통사고였다. 장마가 시작된 여름. 비 오는 저녁 한산한 거리. 읍내 식당을 퇴근하던 우장훈네 아줌마는 횡단보도를 건너다가 신호위반 차에 사고를 당하셨다. 운전자는 뺑소니를 쳤고, 뒤늦게 아줌마를 발견한 사람의 신고로 병원에 옮겼지만 손쓸 틈이 없었다고 했다. 내가 우장훈보다 훨씬 많이 울었다. 학교에서도 내내 기운 없이 앉아만 있다가, 끝나면 빈소로 바로...
*이전에 트위터에 짤막하게 올렸던 구승효 드림 내용이 일부 포함되어 있습니다. 드르륵- 드르륵- 조용한 도서관 책상 위에 올려둔 진동 소리가 거슬려 승효는 얼른 휴대폰을 집어 들고 접힌 폰을 열었다. [보드게임방에서 할리갈리 내기 중-_-ㅋ] [정대 후문 OK노래방] [뭐해? 빨리 와~] [한유정 삘 받아서 메들리한다 ㅋㅋ] “......” 과외 구할 때 ...
우리가 매일 들르던 버스정류장 앞 슈퍼마켓은 임지훈이 대학 가는 대신 아빠의 가게를 물려받으면서 번듯한 편의점으로 바뀌었다. 슬레이트 지붕 씌운 칙칙한 낡은 건물을 멀끔한 통유리 끼운 상자로 갈아치웠으면서도 가게 앞 평상은 낡은 그대로라 독특한 분위기가 있었다. 외지 사람들이 레트로 감성을 느낀다고 거기 앉아서 컵라면도 먹고 아이스크림도 물고 사진 찍는 장...
2016년 9월, 청담동 “으아악! 미치겠네!” 휴대폰 화면을 보던 김재우가 별안간 벌떡 일어섰다. 아 깜짝이야! 근처에 앉은 애들끼리 도란도란 이야기하던 테이블들이 삽시간에 김재우로 시선이 쏠렸다. “아… 망했어. 박성욱 선배 온대 지금.” “뭐? 왜?” “아, 그 선배 극혐인데. 김재우 너가 불렀어?” 남슬기의 다그침에 김재우가 세상 억울하게 눈썹을 늘...
우리집에서 경환이 아저씨네 논 사이로 난 길을 따라 10분 남짓 걷다 보면 이런 시골에는 안 어울리는 책방이 있다. 서울에서 여기로 내려왔던 지난 봄에는 내 무릎 높이에도 못 미치던 벼들이 지금은 제법 무성하게 자랐다. 한창 푸릇한 여름의 벼가 넓게 펼쳐진 들판을 쳐다보며, 간간이 들리는 매미소리 사이마다 덜덜거리는 소음이나 내는 빈 캐리어를 끌고 책방으로...
신입생 오리엔테이션은 듣던대로 술파티였다. 과외쌤도, 담임선생님도 다들 조심하라고 해서 긴장은 했는데 구체적으로 뭘 어떻게 조심해야 할지는 몰랐지. 성인 된 지 겨우 두 달된 신입생들이 알코올에 위를 단련시킬 시간은 턱없이 부족했고, 그걸 알면서도 구태여 술을 잔뜩 먹이려는 선배들은 사악한 악마처럼 보였다. 물론 그러다가 4월부터는 대낮부터 잔디밭에서 폭탄...
2016년 9월, 청담동 무거운 문을 힘겹게 열고 들어선 와인바는 어둑하고 차분한 인테리어와 달리 왁자지껄 들뜬 공기였다. 기대와 다른 부자연스러움에 잠시 적응되지 않은 눈을 깜빡이다 가장 안쪽에서 손을 흔드는 인영을 발견했다. “한유정! 여기!” “아. 오키.” 일행을 찾아 쓸모 없어진 휴대폰 통화를 종료하고 낯익은 얼굴들 사이 빈 자리에 앉았다. 10년...
적어도 내가 알던 우장훈이라면, 너무 울어 눈두덩이가 짓무르기 직전이었던 날 카페에 버려두고 혼자 돌아섰던 그 정도의 싸가지와 결단력이라면 아마 충분히 남남처럼 지낼 수 있을 것 같았는데. 문제라면 우장훈이 죽어서 저승이라도 보고 온 사람마냥 이제는 180도 바뀌어버린 태도로 군다는 거다. 출근길 정문 앞 카페에서 커피를 사면 그도 거기 있었고, 어떤 날은...
이사 온 지 1년이 넘어 가는데 아직도 이 동네 물가는 적응이 안 된다. 무슨 노무 붕어빵이 두 마리 천원이라고요? 전에 살던 동네는 세 마리 천 원이었는데. 떡볶이는 안 팝니까? 붕어빵을 부지런히 굽는 앞에서 투덜대는 남자의 음성에 취기가 가득했다. 네 마리 주이소. 뜨끈한 종이봉투를 받아들고 아파트 단지로 들어서는 남자의 발이 즐겁게 휘청거렸다. -검사...
잡식에 죠필을 곁들인
자유로운 창작이 가능한 기본 포스트
소장본, 굿즈 등 실물 상품을 판매하는 스토어
정기 후원을 시작하시겠습니까?
설정한 기간의 데이터를 파일로 다운로드합니다. 보고서 파일 생성에는 최대 3분이 소요됩니다.
포인트 자동 충전을 해지합니다. 해지하지 않고도 ‘자동 충전 설정 변경하기' 버튼을 눌러 포인트 자동 충전 설정을 변경할 수 있어요. 설정을 변경하고 편리한 자동 충전을 계속 이용해보세요.
중복으로 선택할 수 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