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장님 남자친구 있으세요?” 우유크림 드실 거죠? 한 손으로는 도넛을 건네면서, 마치 또 다른 손으로는 커피라도 내미는 듯 덤덤히 툭 내밀어진 김준혁 변호사의 질문. 우장훈과 냉전이 10일을 채워 최장기록을 세우던 날 아침. 많은 생각이 들게 하는 김준혁의 한 문장. 기분이 묘했다. 김준혁이 주는 내 취향의 도넛을 받아들면서 대답했다. “네. 있어요.” ...
내가 직장 생활 처세술, 자기계발서 따위를 이제 안 읽는 이유는 표현과 내용이 상당히 애매하고 명확한 해결책은 제시하지 않기 때문이다. 예전에 본 책 중에 이런 구절이 있었다. 직장생활에서 언제 닥쳐올지 모르는 위기를 극복하려면 평소에 상사와 좋은 관계를 형성해두세요. 근데 가장 중요한, 당최 어디까지가 좋은 관계인지 그 범위는 구체적으로 안 나와 있더라고...
3편으로 끝냈던 글과 이어집니다. https://posty.pe/lp0916 로펌의 봄은 5월부터 시작된다. 변호사시험을 합격한 새내기 변호사들이 대거 들어오거든. 비서 입장에서 신입 변호사는 상당히 귀찮다. 딱 초딩 1학년 급으로 손이 많이 간다. 이거저거 모르는 것도 많고, 해달라는 것도 많고, 안되는걸 되게 해달라고 조를 땐 난감하다. 그래도 장점이라...
결국 사랑의 뭔약이 일을 냈다. 크다면 큰 사고를 치고 여진에게도 약에 취한 황시목이나 돌보라며 용산서 출입금지령이 떨어지고 말았다. 조직에서 쫓겨난 공무원들이 이렇게 천하태평으로 늘어져도 되려나 싶을 만큼, 평일 낮의 남산 둘레길은 도심에서 듣기 힘든 새 소리가 가득했다. 여기서부터 4.2km. 얼마 안 되는데 걸어가죠! 가열차게 쭉 팔 한번 펴고 시작한...
"아닌데요. 진짜 괜찮은데요." 킁, 대답과 동시에 시목의 콧물 들이마시는 소리. 여진은 으이구 소리를 내며 티슈를 뽑아 시목의 코 밑에 들이댄다. 옥탑방에 들어서자마자 여진은 부랴부랴 창문을 열고, 공기청정기 파워를 최고로 올리는 분주함을 떨었고 그 사이 시목은 슬쩍 여진이 건네준 티슈로 코 밑을 훔쳤다. "정말로 동물 털 알러지는 아닙니다. 환절기마다 ...
[11시 방향, 청자켓, 빨강 스니커즈.] [이동 중. 건물을 나왔고... 후문 맞은편 빈 상가로 들어갑니다.] 인이어에서 들려오는 시목의 긴장된 목소리에 맞춰 여진도 조심스레 건물 뒷편을 향해 캣워크를 시작했다. 건물 전면에 크게 걸린 '전체 임대' 플랜카드가 바람을 따라 펄럭펄럭 소리를 냈다. 혹시 모르니까, 테이저건 까지 빼든 여진은 입구에서 시목과 ...
도도하게 꼬아 넘긴 다리 끝에 걸린 윤 나는 검정 구두. 다크 그레이의 쓰리피스 수트는 빈 틈 없이 꼭 맞게. 사선의 스트라이프 넥타이는 맞은편 남자의 꽤 높은 수준의 감각을 자랑하는 듯. 깔끔하게 정돈된 머리 아래 자리잡은 다부진 눈매와 콧대. 두툼한 손으로 든 하얀 커피잔에 맞닿는 입술은 시선이 마주치자 호선을 그린다. 약속시간에 딱 맞게 카페에 도착한...
요즘 되는 일이 없다. 하다 못해 불이 없어서 담배도 맘대로 못 핀다. 황승효는 담배를 입에 물고 재킷을 더듬거리다 신경질적으로 빈 담배를 도로 집어 넣었다. 되는 일이 있는게 더 이상하지. 새어 나오는 헛웃음. 한 달. 팔자에도 없는 (아님 원래 팔자에 있어서 이렇게 됐나?) 서울대 출신 사시 패스 관종-적어도 구승효 기준에 그는 TV에 얼굴을 들이밀고 ...
두 남자의 종이 넘기는 소리로만 채워진 밤 10시 공덕동 아파트. 맥주를 홀짝이며 서류를 넘기는 황승효의 손가락에 끼워진 익숙한 골무에 구시목의 시선이 흘낏 머물렀다. 이거, 써보니까 편하던데요. 눈치껏 한 마디 던진 황승효의 눈길은 곧장 거둬지지 않고 말을 더 붙일 타이밍을 노린다. 그 눈길을 의식한 구시목이 황색 파일에서 얼굴을 떼고 현실로 나올 때까지...
대한민국 검찰 별거 없네. 오전에 출근해서 서류 읽고 사인하고, 점심 먹고, 오후에 다시 앉아서 서류 읽고 사인하고, 가끔 조사실에서 가만히 눈빛만 쏘고 있으면 계장이 알아서 척척 질문하고 답변 정리까지. 황승효는 2주째 맞이하는 평화로운 서부지검 형사3부 검사의 삶이 은근 만족스러웠다. 이 정도라면 가장 큰 걱정은 근손실 뿐이겠는데? 계장의 표현에 의하면...
시목의 집은 외딴 산 속 암자 수준으로 어둡고, 조용했다. 혼자 살기에 모자람도 부족함도 없는 공간에는 딱 필요한 가구들이 큰 덩어리를 차지하고 나머지는 다 책으로 채워졌다. 딥그레이 벽지와 누르스름한 간접조명의 콜라보로 탄생한 저채도의 숨막히는 정갈함. 집에 뭐 하나 속 시원하게 생겨먹은게 없어. 새삼 제 집 풍경을 돌아보던 황시목이 조금 전 상대방의 제...
잡식에 죠필을 곁들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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